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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홀 미스터리

14. 블랙홀 미스터리 , 인류가 블랙홀을 만들 수 있는가

인류가 블랙홀을 만들 수 있는가 — 초미니 블랙홀과 여분 차원

블랙홀을 만들려면 별 하나를 붕괴시켜야 한다. 적어도 태양 질량의 수 배에 달하는 별이 핵연료를 다 소진하고 자신의 무게를 버티지 못해 중력 붕괴를 일으킬 때 블랙홀이 생긴다. 이것이 표준적인 이해다. 실험실에서 블랙홀을 만든다는 발상은 공상과학 소설의 영역처럼 들린다.

그런데 물리학의 한 이론은 그 가능성이 완전히 닫혀 있지 않다고 말한다. 우주에 우리가 경험하는 4차원 시공간 너머에 추가 차원이 존재한다면, 블랙홀 생성에 필요한 에너지 문턱이 현재 기술로 도달 가능한 수준으로 낮아질 수 있다. 인류가 블랙홀을 만들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이 이론을 통해 진지한 물리학의 대화로 진입한다.

 

초미니 블랙홀, 인류가 블랙홀을 만들 수 있는가

1. 블랙홀 생성의 조건과 플랑크 에너지

어떤 물체든 충분히 작은 공간에 충분한 질량을 압축하면 블랙홀이 된다. 이 조건을 수식으로 표현한 것이 슈바르츠실트 반경이다. 태양을 블랙홀로 만들려면 반지름 약 3킬로미터의 구 안에 태양 전체를 집어넣어야 한다. 양성자 하나를 블랙홀로 만들려면 그 질량을 플랑크 길이(약 1.6 × 10⁻³⁵미터)라는 극도로 작은 크기로 압축해야 한다.

이 압축에 필요한 에너지가 플랑크 에너지다. 플랑크 에너지란 양자 중력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는 에너지 규모로, 약 10¹⁹기가전자볼트(GeV)에 해당한다. 현재 인류가 보유한 최고 성능의 입자 가속기인 LHC(대형 강입자 충돌기, Large Hadron Collider)의 최대 충돌 에너지는 약 13,600GeV다. 플랑크 에너지와 비교하면 10¹⁵배, 즉 천조 배 이상 부족하다.

이 엄청난 격차 때문에 표준 물리학 프레임에서 실험실 블랙홀 생성은 논의조차 되지 않는다. 그런데 여분 차원 이론은 이 계산의 전제를 바꾼다.

 

초미니 블랙홀, 여분 차원, 플랑크 에너지

2. 여분 차원이 문턱을 낮추는 이유

1999년 물리학자 리사 랜달(Lisa Randall)과 라만 선드럼(Raman Sundrum)은 이른바 랜달-선드럼 모델을 제안했다. 이 모델은 우주에 우리가 직접 경험하는 4차원 시공간 외에도 추가적인 공간 차원이 존재하지만, 그 차원으로는 중력만 퍼져나갈 수 있고 일반 물질과 빛은 4차원 막(brane)에 갇혀 있다는 것이다.

이 설정이 블랙홀 생성 조건을 바꾸는 이유는 중력의 희석 때문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중력이 나머지 힘들에 비해 유독 약한 것은 오래된 수수께끼다. 전자기력과 비교하면 중력은 약 10³⁶배나 약하다. 랜달-선드럼 모델은 이것을 중력이 추가 차원으로 새어나가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중력은 여분 차원에 퍼져 희석되므로 4차원에서 관측하면 약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 설명이 맞다면, 매우 짧은 거리, 즉 여분 차원의 크기보다 작은 스케일에서는 중력이 희석되지 않고 본래의 강도로 작용한다. 이 영역에서의 플랑크 에너지는 표준 계산치인 10¹⁹GeV보다 훨씬 낮아질 수 있다. 이론에 따라 다르지만 LHC의 에너지 범위인 테라전자볼트(TeV) 규모까지 낮아질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이것이 LHC 가동 초기에 초미니 블랙홀 생성 가능성이 학계에서 진지하게 논의된 물리학적 배경이다.

 

여분 차원, 초미니 블랙홀, 인류가 블랙홀을 만들 수 있는가

3. LHC의 블랙홀 공포와 실제 물리학

LHC가 2008년 첫 가동을 앞두었을 때 일부에서 지구 종말 우려가 제기됐다. 가속기에서 초미니 블랙홀이 생성되고, 그것이 지구를 통째로 집어삼킨다는 시나리오였다. 소송까지 이어질 만큼 사회적 반향이 있었다.

물리학자들의 판단은 명확했다. 두 가지 이유에서 위험하지 않다.

첫 번째 이유는 호킹 복사다. 이 시리즈 첫 번째 글에서 다룬 것처럼, 극도로 작은 블랙홀은 질량이 작을수록 호킹 복사에 의해 더 빠르게 증발한다. 실험실에서 생성 가능한 초미니 블랙홀의 질량은 극히 작아서 생성되는 즉시, 물리적으로는 10⁻²⁷초 이내에 완전히 증발해 사라진다. 지구를 삼킬 시간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두 번째 이유는 우주선(cosmic ray)이다. 우주에서는 매 순간 지구를 포함한 천체들에 LHC보다 훨씬 높은 에너지의 입자들이 쏟아지고 있다. 우주선 충돌 에너지는 LHC의 최대 에너지를 수백만 배 이상 초과하는 경우도 있다. 만약 그 에너지에서 블랙홀이 생성되고 위험하다면, 지구와 달과 태양은 이미 수십억 년 전에 사라졌을 것이다. 천체들이 현재도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고에너지 입자 충돌이 안전하다는 증거다.

실제 LHC 운영 결과, 현재까지 초미니 블랙홀의 직접적인 생성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것은 여분 차원 이론이 틀렸다는 뜻일 수도 있고, 여분 차원의 크기가 LHC의 에너지 범위에서 효과를 내기에 너무 작다는 뜻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결론은 나지 않았다.

 

초미니 블랙홀, 인류가 블랙홀을 만들 수 있는가

마무리

인류가 블랙홀을 만들 수 있는가. 표준 물리학의 답은 아직 불가능하다이다. 여분 차원이 존재한다면 가능성이 열린다는 이론이 있고, LHC는 그 가능성을 탐색했지만 직접적인 증거를 내놓지 못했다.

그러나 이 질문이 흥미로운 것은 블랙홀 생성 여부 자체보다 그 배경에 있는 물리학 때문이다. 실험실에서 블랙홀을 만들 수 있다는 이론이 성립하려면 우주에 추가 차원이 존재해야 한다. 그 조건이 맞는지 틀리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은 곧 우주의 기본 구조, 공간이 몇 차원인지, 중력이 왜 다른 힘에 비해 약한지를 묻는 과정이다. 초미니 블랙홀은 만들어지지 않아도 괜찮다. 그것을 만들려는 시도 자체가 우리 우주의 숨겨진 층위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방법이다.

블랙홀을 만드는 것이 상상 속 이야기라면, 블랙홀 옆에서 살아가는 천체는 현실이다. 우주에는 블랙홀 바로 곁에서 별이 존재하는 극한 환경이 실제로 관측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