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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홀 미스터리

15. 블랙홀 미스터리 , 블랙홀 옆에서 별이 산다 — 극한 쌍성계의 비밀

블랙홀 옆에서 별이 산다 — 극한 쌍성계의 비밀

블랙홀 바로 옆에서 별이 살고 있다. 수백만 년째, 천천히 물질을 빼앗기면서도 아직 살아 있다. 블랙홀은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존재라는 인식과 정반대되는 이 장면이 우주 곳곳에서 실제로 관측된다.

두 천체가 중력으로 묶여 서로를 공전하는 쌍성계는 우주에서 흔한 구조다. 그런데 그 쌍 중 하나가 블랙홀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블랙홀-별 쌍성계, 즉 X선 이진계(X-ray binary)는 우주에서 가장 극한적인 물리 조건 중 하나를 만들어낸다. 이 시스템 안에서 별은 파괴되지 않고 버티며, 그 과정에서 블랙홀은 우주에서 가장 밝은 X선 광원 중 하나가 된다. 극한 쌍성계의 비밀은 단순히 블랙홀이 별을 잡아먹는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블랙홀 쌍성계, 극한 쌍성계

1. 백조자리 X-1 — 블랙홀로 확인되기까지

X선 이진계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백조자리 X-1(Cygnus X-1)이다. 1964년 로켓 탑재 X선 검출기가 처음 발견했을 때, 이것은 당시 알려진 X선 천체 중 가장 밝은 것 중 하나였다. 그러나 X선 방출원의 정체는 한동안 논쟁 대상이었다.

1971년 전파 망원경을 이용한 위치 측정으로 백조자리 X-1의 동반 천체가 HDE 226868이라는 청색 초거성임이 확인됐다. 두 천체는 약 5.6일 주기로 서로를 공전하고 있었다. 동반 별의 질량과 궤도 운동을 분석하면 X선 방출원의 질량을 추정할 수 있다. 계산 결과 X선 방출원의 질량은 태양의 약 21배였다.

이 질량값이 결정적이었다. 중성자별이 가질 수 있는 최대 질량은 이론적으로 태양의 약 3배를 넘지 않는다. 태양의 21배에 달하는 천체가 그토록 작은 부피에 압축되어 있다면 블랙홀 외의 다른 설명이 없었다. 백조자리 X-1은 블랙홀의 존재를 처음으로 강력하게 시사한 천체 중 하나가 됐다. 이후 수십 년에 걸친 정밀 관측으로 현재 백조자리 X-1의 블랙홀 질량은 태양의 약 21.2배로 확정됐고, 지구로부터의 거리는 약 7200광년으로 측정됐다.

백조자리 X-1은 스티븐 호킹과 물리학자 킵 손(Kip Thorne) 사이의 유명한 내기와도 연결된다. 1974년 호킹은 백조자리 X-1이 블랙홀이 아닐 것이라는 쪽에 내기를 걸었다. 블랙홀 연구에 평생을 바친 사람이 블랙홀의 존재에 반대하는 내기를 건 것은 일종의 보험이었다. 1990년 호킹은 패배를 인정했다. 증거가 충분히 쌓인 시점이었다.

 

X선 이진계, 블랙홀 쌍성계

2. 강착 원반에서 X선이 쏟아지는 원리

X선 이진계에서 블랙홀이 강렬한 X선을 방출하는 이유는 강착 원반(accretion disk)의 물리 때문이다.

동반 별에서 블랙홀로 직접 물질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두 천체가 서로를 공전하는 시스템에서 각운동량이 보존되어야 하기 때문에, 별에서 흘러나온 물질은 블랙홀 주위를 돌며 나선형 원반을 형성한다. 이것이 강착 원반이다.

강착 원반 안에서 물질들은 서로 충돌하고 마찰을 일으킨다. 마찰과 압축으로 내부 온도가 수백만 도에서 수천만 도까지 상승한다. 이 온도에서 물질은 열복사로 대량의 에너지를 방출하는데, 수천만 도의 플라스마가 방출하는 복사는 주로 X선 대역이다. 그래서 이 시스템이 X선으로 밝게 빛난다.

에너지 효율이 극도로 높다는 것이 강착 원반의 특징이다. 물질이 강착 원반을 통해 블랙홀로 떨어지는 과정에서 방출되는 에너지는 질량의 최대 10퍼센트에 달한다. 수소 핵융합의 에너지 효율이 질량의 약 0.7퍼센트인 것과 비교하면 약 15배 이상 효율이 높다. 블랙홀 근방이 우주에서 가장 효율적인 에너지 변환 환경 중 하나인 이유다.

강착 원반의 가장 안쪽 궤도, 즉 안정 원형 궤도의 최내각(innermost stable circular orbit, ISCO) 안쪽으로 떨어진 물질은 회복 불가능한 나선 낙하 경로에 진입해 사건의 지평선을 넘는다. ISCO의 위치는 블랙홀의 회전 속도에 따라 달라진다. 블랙홀이 빠르게 회전할수록 ISCO가 사건의 지평선에 가까워지고, 더 많은 에너지를 방출할 수 있다.

 

X선 이진계, 강착 원반

3. 별은 어떻게 버티는가

블랙홀 바로 옆에서 별이 수백만 년을 버티는 이유는 무엇인가. 블랙홀이 별을 한 번에 집어삼키지 않기 때문이다.

X선 이진계에서 별에서 블랙홀로 물질이 이동하는 방식은 주로 두 가지다. 하나는 항성풍(stellar wind)이다. 질량이 큰 별은 표면에서 지속적으로 입자를 방출하는 항성풍을 만들어낸다. 동반 별이 청색 초거성이나 질량이 큰 별일 경우 항성풍의 일부가 블랙홀의 중력에 포획되어 강착 원반으로 유입된다. 이 방식은 물질 전달량이 비교적 작고 별 전체는 손상되지 않는다.

두 번째는 로슈 엽 오버플로(Roche lobe overflow)다. 로슈 엽이란 두 천체 사이에서 각 천체의 중력이 지배하는 영역의 경계다. 별이 팽창하거나 두 천체 사이 거리가 좁아져 별이 자신의 로슈 엽 경계를 넘으면, 별의 외층 물질이 블랙홀 쪽으로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이 경우 물질 전달량이 커서 X선 밝기가 급격히 증가하는 X선 신성(X-ray nova) 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어느 방식이든 별 전체가 순식간에 사라지지 않는다. 항성풍 포획의 경우 별은 자신의 질량을 아주 천천히 잃을 뿐이다. 로슈 엽 오버플로의 경우도 외층부터 서서히 유출된다. 블랙홀의 조석력이 별 전체를 한꺼번에 분해하는 조석 파괴 현상(tidal disruption event)은 주로 별이 블랙홀에 가까이 접근하는 돌발적 사건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안정적인 쌍성계에서는 발생하지 않는다. 쌍성계의 궤도 반경이 조석 파괴가 일어나는 거리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X선 이진계에서 동반 별은 수백만 년에서 수십억 년에 걸쳐 서서히 물질을 잃으며 공존한다. 그 공존의 끝에 동반 별도 진화를 마치고 폭발하거나, 물질을 다 잃고 백색왜성이 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두 번째 블랙홀이 탄생해 이중 블랙홀 시스템이 형성되기도 한다.

 

블랙홀 쌍성계, 극한 쌍성계의 비밀

마무리

블랙홀 옆에서 별이 산다. 이 문장이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현재 진행 중인 우주의 현실이라는 것이, 백조자리 X-1을 비롯한 수십 개의 X선 이진계가 보여준다.

극한 쌍성계의 비밀은 블랙홀이 항상 즉각적인 파괴자가 아니라는 데 있다. 올바른 거리와 올바른 궤도 조건이 만족되면, 블랙홀과 별은 수백만 년의 공존을 유지한다. 그 공존은 일방적이지 않다. 블랙홀은 별에서 물질을 받아 우주에서 가장 밝은 X선 광원 중 하나가 되고, 별은 물질을 내어주면서도 자신의 구조를 유지한다. 서로의 존재가 상대를 규정하는 시스템이다.

우주의 극한 환경은 종종 파괴의 언어로 묘사된다. 그러나 X선 이진계는 다른 이야기를 한다. 가장 압도적인 중력 환경 옆에서도 구조는 유지될 수 있고, 공존은 가능하다. 블랙홀은 파괴자이면서 동시에 어떤 시스템의 중심이기도 하다. 그 중심을 기준으로 우주의 일부가 수백만 년을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