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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홀 미스터리

05. 블랙홀 미스터리 , 블랙홀 충돌 직전

블랙홀 충돌 직전 — 두 사건의 지평선은 어떻게 하나가 되는가

2015년 9월 14일, 미국의 중력파 검출 장치 LIGO는 약 1조 분의 1밀리미터 수준의 미세한 떨림을 감지했다. 그 떨림의 정체는 13억 광년 떨어진 곳에서 두 개의 블랙홀이 충돌하면서 만들어낸 중력파였다. 우주에서 가장 격렬한 충돌이 일어났는데, 빛도 소리도 없었다. 오직 시공간 자체의 파동만이 지구까지 전달됐다.

이 사건은 중력파 천문학의 시작을 알리는 역사적 순간이었지만, 동시에 블랙홀 충돌이라는 현상 자체에 대한 관심을 새롭게 불러일으켰다. 두 개의 블랙홀이 서로를 향해 나선형으로 접근하다 하나로 합쳐지는 그 순간, 두 사건의 지평선은 어떻게 하나가 되는가. 우주에서 가장 극단적인 두 경계가 만나는 그 찰나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빛도 빠져나오지 못하는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블랙홀 충돌, 두 사건의 지평선

1. 충돌 전 — 나선형 접근의 끝

두 블랙홀이 충돌하기까지의 과정은 수백만 년에서 수억 년에 걸쳐 진행된다. 두 블랙홀이 서로의 중력에 붙잡히면, 처음에는 매우 넓은 궤도를 그리며 서로를 공전한다. 이 단계에서 두 천체는 중력파를 방출하기 시작한다. 중력파를 방출할 때마다 에너지를 잃고, 에너지를 잃을수록 궤도는 점점 좁아진다.

이 과정은 처음에는 극히 느리게 진행된다. 그러다 두 블랙홀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중력파 방출이 가속되고, 궤도 수축 속도도 함께 빨라진다. 마지막 수 초에 이르면 상황은 폭발적으로 빠르게 전개된다. 두 블랙홀은 서로를 향해 급격히 나선을 좁히며 돌진한다. LIGO가 2015년에 감지한 신호는 바로 이 마지막 몇 초 동안 방출된 중력파였다. 약 0.2초에 불과한 신호 안에 수십억 년에 걸친 두 블랙홀의 접근 과정이 압축되어 있었다.

충돌 직전 단계에서 방출되는 중력파의 세기는 우주 전체의 전자기 복사 에너지를 훨씬 능가한다. 그러나 중력파는 물질과 거의 상호작용하지 않기 때문에 지구에서 감지하기 위해서는 극도로 정밀한 장비가 필요하다. LIGO는 레이저 간섭계를 이용해 4킬로미터 길이의 경로에서 양성자 지름의 수천 분의 1에 해당하는 변화를 측정했다.

 

블랙홀 충돌 직전, 사건의 지평선

2. 충돌 순간 — 두 지평선이 하나가 되는 방식

두 사건의 지평선이 하나로 합쳐지는 순간은 어떤 모습일까. 이것은 관측이 아니라 수치 상대성 이론(numerical relativity), 즉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계산된 결과다. 블랙홀 충돌은 너무 극단적인 환경이어서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을 손으로 푸는 것이 불가능하고, 수천 대의 컴퓨터가 수개월에 걸쳐 계산해야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두 블랙홀이 서로 매우 가까워지면 사건의 지평선이 먼저 변형되기 시작한다. 각각의 지평선이 상대 블랙홀의 강한 중력에 의해 당겨지면서 구형에서 벗어나 늘어지기 시작한다. 이 변형이 진행되면서 두 지평선 사이의 공간이 극도로 좁아지다가, 어느 임계점에서 두 지평선이 하나의 경계면으로 연결된다. 이 순간을 합병(merger)이라고 부른다.

합병 직후의 블랙홀은 완전히 불규칙하고 진동하는 형태를 갖는다. 찌그러지고 흔들리는 이 새로운 블랙홀은 중력파를 방출하면서 점차 안정적인 구형으로 수렴한다. 이 안정화 과정을 링다운(ringdown)이라고 한다. 충돌 과정에서 전체 질량의 일부가 중력파로 전환되어 방출된다. 2015년 충돌의 경우 두 블랙홀을 합친 질량의 약 5퍼센트가 중력파 에너지로 빠져나갔다. 태양 질량의 약 3배에 해당하는 에너지가 순식간에 시공간의 파동으로 변환된 것이다.

 

두 사건의 지평선이 하나가 되는 방식

3. 우리가 볼 수 없는 것과 알 수 있는 것

블랙홀 충돌에서 아이러니한 점이 있다. 충돌의 가장 극적인 순간, 즉 두 사건의 지평선이 하나로 합쳐지는 그 찰나는 빛으로는 절대 관측할 수 없다. 블랙홀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은 어떤 전자기 신호도 바깥으로 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력파는 다르다. 중력파는 시공간 자체의 파동이기 때문에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에도 막히지 않는다. 두 지평선이 합쳐지는 과정, 새로운 블랙홀이 진동하다 안정화되는 과정, 이 모든 것이 중력파 신호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LIGO가 감지한 0.2초짜리 신호를 역추적하면 충돌 당시 두 블랙홀의 질량, 자전 속도, 합병 이후 새 블랙홀의 특성까지 계산해낼 수 있다.

2015년 이후 LIGO와 유럽의 Virgo 검출기는 수십 건의 블랙홀 합병을 추가로 감지했다. 각각의 사건은 서로 다른 질량과 조건을 가진 블랙홀들의 충돌이었고, 그 데이터들이 쌓이면서 일반 상대성 이론의 예측이 극단적인 환경에서도 유효하다는 사실이 거듭 확인됐다. 동시에 예측과 미세하게 어긋나는 부분들도 발견되고 있어, 중력의 완전한 이론을 향한 실마리가 조금씩 모이고 있다.

 

블랙홀 충돌, 중력파

마무리

두 블랙홀이 충돌하는 순간은 빛으로는 볼 수 없다. 그러나 시공간의 파동은 우주를 가로질러 지구까지 전달된다. 2015년 LIGO가 감지한 그 미세한 떨림은, 우리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우주를 들을 수 있게 됐다는 선언이었다.

두 사건의 지평선이 하나가 되는 그 순간은 여전히 우리가 직접 볼 수 없는 사건이다. 계산과 시뮬레이션이 그 장면을 재구성하지만, 그것이 실제 모습과 정확히 일치하는지 확인할 방법은 아직 없다. 블랙홀 충돌은 우주에서 가장 격렬한 사건이면서도, 동시에 우리가 가장 간접적인 방식으로만 접근할 수 있는 현상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그 충돌의 잔해 안에 담긴 정보가 어디로 가는지는, 다음에 다룰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