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블랙홀 미스터리

06. 블랙홀 미스터리 , 블랙홀은 정보를 영원히 삼키는가

블랙홀은 정보를 영원히 삼키는가 — 호킹과 물리학자들의 50년 전쟁

물리학에는 흔들려서는 안 되는 원칙이 하나 있다. 우주에서 정보는 사라지지 않는다. 어떤 물리적 과정을 거치더라도, 계의 초기 상태를 알면 이론적으로는 최종 상태를 역추적할 수 있어야 한다. 불에 탄 책도, 충돌한 입자도, 원칙적으로는 그 모든 정보가 어딘가에 보존되어 있다고 물리학은 말한다.

그런데 블랙홀이 그 원칙을 위협한다. 블랙홀로 떨어진 물질은 돌아오지 않는다. 블랙홀이 천천히 증발해 사라지면, 그 안에 담겼던 정보도 함께 사라지는 것처럼 보인다. 스티븐 호킹은 1976년 이것이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블랙홀은 정보를 영원히 삼킨다. 이 주장은 물리학의 근본 원칙과 정면으로 충돌했고, 이후 50년 가까이 이어진 논쟁의 불씨가 됐다.

 

블랙홀은 정보를 영원히 삼키는가

1. 역설의 시작 — 호킹의 주장

1974년 호킹은 블랙홀이 호킹 복사를 방출하며 천천히 증발한다는 이론을 발표했다. 이 시리즈 첫 번째 글에서 다뤘듯, 블랙홀은 영원하지 않다. 문제는 호킹 복사의 성질에 있었다.

호킹 복사는 블랙홀 내부의 특정 물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사건의 지평선 근처의 양자 요동에서 발생하는 열복사에 가깝다. 이 복사는 블랙홀 내부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와 무관하게, 오직 블랙홀의 온도(질량)에 의해서만 결정된다. 금덩어리가 들어갔든 책이 들어갔든 별이 들어갔든, 호킹 복사는 동일하게 나온다.

호킹은 1976년 이 논리의 끝을 밀어붙였다. 블랙홀이 완전히 증발하면, 내부에 담겼던 물질에 대한 정보는 복원 불가능하게 사라진다. 이것은 양자역학의 핵심 원리인 유니터리성(unitarity) — 물리계의 정보는 항상 보존된다는 원칙 — 과 직접 충돌한다. 한쪽이 맞으면 다른 쪽이 틀려야 한다. 호킹 복사가 맞다면 양자역학의 근본이 흔들리고, 양자역학이 맞다면 호킹의 계산 어딘가에 오류가 있어야 한다.

이것이 블랙홀 정보 역설(black hole information paradox)이다.

 

블랙홀 정보 역설, 호킹 복사

2. 호킹이 스스로 번복한 날

1976년부터 시작된 논쟁은 30년 가까이 이어졌다. 물리학계는 크게 두 진영으로 나뉘었다. 호킹을 중심으로 한 일반 상대성 이론 진영은 정보가 실제로 사라진다고 주장했다. 레너드 서스킨드(Leonard Susskind)와 제라드 트 후프트(Gerard 't Hooft)를 중심으로 한 양자역학 진영은 정보는 반드시 보존된다고 맞섰다.

서스킨드는 이 논쟁을 정리한 책 제목을 아예 '호킹과의 전쟁'이라고 붙였다. 단순한 학문적 이견이 아니었다. 우주의 근본 법칙 중 하나가 틀렸음을 인정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전환점은 2004년에 찾아왔다. 호킹이 직접 자신의 입장을 번복했다. 그는 더블린에서 열린 학술 대회에서 블랙홀 정보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했다. 정보는 호킹 복사를 통해 어떤 형태로든 외부로 방출된다고 수정했다. 30년 가까이 고수하던 주장을 스스로 뒤집은 것이다. 호킹은 동시에 레너드 서스킨드에게 내기에서 졌다는 것을 인정하고 야구 백과사전 한 권을 건넸다.

그러나 이 번복이 문제를 해결하지는 않았다. 호킹이 정보가 보존된다고 입장을 바꾸기는 했지만, 어떤 메커니즘으로 정보가 호킹 복사 안에 담기는지는 여전히 설명되지 않았다. 정보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에는 동의했지만, 그렇다면 정보가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보존되는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호킹과 물리학자들의 50년 전쟁

3. 현재 —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호킹의 번복 이후에도 논쟁은 계속됐다. 새로운 형태의 역설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2012년 아흐마드 알미헤이리(Ahmed Almheiri)를 포함한 네 명의 물리학자가 파이어월 역설(firewall paradox)을 제기했다. 이들의 주장은 이랬다. 정보가 보존되려면 호킹 복사 입자들이 서로 양자 얽힘으로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러려면 사건의 지평선에 극도로 높은 에너지를 가진 입자들의 장벽, 즉 파이어월이 형성되어야 한다. 이 파이어월이 존재한다면, 블랙홀로 떨어지는 낙하자는 경계를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통과한다는 일반 상대성 이론의 예측이 틀린 것이 된다.

정보를 살리면 낙하자가 불타고, 낙하자를 살리면 정보가 사라진다. 두 가지 모두 만족하는 해답은 아직 없다.

가장 유력하게 논의되는 방향 중 하나는 홀로그래피 원리(holographic principle)다. 블랙홀 내부의 정보가 실제로는 사건의 지평선이라는 2차원 경계면에 인코딩되어 있다는 개념이다. 마치 3차원 물체의 정보가 2차원 홀로그램 필름에 담길 수 있는 것처럼. 이 방향은 끈 이론(string theory)과 연결되며 물리학자들 사이에서 가장 활발히 연구되고 있지만, 여전히 완성된 이론이 아니다.

정보 역설은 현재까지도 해결되지 않았다. 일반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을 하나로 통합하는 이론, 이른바 양자 중력 이론이 완성되어야만 이 역설이 풀릴 수 있다는 것이 많은 물리학자들의 견해다.

 

블랙홀은 정보를 영원히 삼키는가

마무리

블랙홀은 정보를 영원히 삼키는가. 호킹은 한때 그렇다고 했고, 나중에 그렇지 않다고 입장을 바꿨다. 그러나 어떻게 정보가 보존되는지는 여전히 설명되지 않는다. 50년 가까운 논쟁 끝에 우리가 확실히 알게 된 것은, 이 질문이 단순히 블랙홀에 관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정보 역설을 푸는 것은 일반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이라는 두 거대한 이론을 하나로 합치는 일과 같다. 인류가 아직 이루지 못한 물리학의 가장 큰 과제다. 블랙홀은 그 과제를 가장 날카롭게 드러내는 무대다. 그리고 그 블랙홀의 씨앗이 우주 초기에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라는 질문은, 다음 이야기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