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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홀 미스터리

01. 블랙홀 미스터리 , 블랙홀은 천천히 죽는다

블랙홀은 천천히 죽는다 — 그 끝에 우주는 무엇이 남는가

블랙홀은 흔히 영원한 존재로 여겨진다. 빛조차 탈출하지 못하는 극단적인 중력,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사건의 지평선. 한번 들어간 것은 절대 나오지 못한다는 이 단순한 사실 앞에서, 블랙홀은 우주에서 가장 불멸에 가까운 천체처럼 보인다. 그 무엇도 블랙홀을 줄이거나 약하게 만들 수 없다는 직관은 꽤 설득력 있게 느껴진다.

그런데 1974년, 스티븐 호킹은 그 생각을 조용히 뒤흔드는 이론을 발표했다. 블랙홀은 천천히 증발한다. 아주 천천히, 인간의 시간 감각으로는 가늠조차 안 되는 속도로, 블랙홀은 조금씩 질량을 잃고 결국 완전히 사라진다. 블랙홀이 천천히 죽는다면, 그 끝에 우주는 무엇이 남는가. 이 질문은 단순히 블랙홀 하나의 운명을 묻는 것이 아니라, 우주 전체가 어디를 향해 가는지를 묻는 것과 다르지 않다.

 

블랙홀은 천천히 죽는다

1. 호킹이 발견한 것

1974년 스티븐 호킹이 발표한 이론은 당시 물리학계에 적지 않은 혼란을 안겼다. 블랙홀은 열을 방출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블랙홀은 마치 특정 온도를 가진 물체처럼 복사선을 방출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호킹 복사(Hawking radiation)라고 불리는 현상이다.

이 이론이 당혹스러웠던 이유는 명확했다. 블랙홀은 빛조차 탈출시키지 않는 천체다. 그런데 어떻게 에너지가 바깥으로 빠져나올 수 있단 말인가. 호킹의 설명은 양자역학에서 출발했다. 진공처럼 보이는 우주 공간에서는 입자와 반입자 쌍이 끊임없이 생성됐다가 서로 소멸한다. 이 과정을 양자 요동(quantum fluctuation)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경우 이 쌍은 생겨난 즉시 다시 합쳐져 사라지지만,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 바로 근처에서는 다른 일이 벌어진다. 사건의 지평선이란 블랙홀의 경계면으로, 이 선을 넘으면 빛조차 탈출할 수 없는 지점이다.

한 입자는 블랙홀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나머지 입자는 바깥으로 탈출한다. 탈출한 입자가 바로 호킹 복사다. 블랙홀은 안으로 들어온 입자의 음수 에너지를 흡수하면서 실질적으로 질량을 잃게 된다. 아주 조금씩, 그러나 멈추지 않고.

물리학계의 반응은 처음에는 회의적이었다. 호킹이 발표했을 때 일부 물리학자들은 계산 오류를 의심했다. 블랙홀이 복사를 방출한다는 것은 기존 이론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주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립적인 검증이 반복되면서 이론 자체의 수학적 정합성은 인정받았다. 문제는 이 복사가 너무 미약해서 현재 기술로는 직접 관측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호킹 복사는 오늘날까지도 간접적인 이론적 지지만 받고 있을 뿐, 실험적으로 확인된 적이 없다.

 

블랙홀 증발, 호킹 복사

2. 블랙홀이 죽기까지 걸리는 시간

블랙홀이 증발한다고 해서 그 과정이 빠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블랙홀의 질량이 클수록 증발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늘어난다.

태양과 비슷한 질량을 가진 블랙홀 하나가 완전히 증발하려면 대략 10의 67승 년이 걸린다. 현재 우주의 나이가 약 138억 년, 즉 10의 10승 년 수준임을 감안하면, 이 숫자가 얼마나 거대한지 짐작할 수 있다. 은하 중심부에 자리한 초거대 블랙홀의 경우 증발 시간은 10의 100승 년을 훌쩍 넘어간다. 이 시간 규모는 어떤 언어로도 직관적으로 표현하기 어렵다.

여기서 흥미로운 역전이 일어난다. 블랙홀의 질량이 줄어들수록 증발 속도는 오히려 빨라진다. 이것은 호킹 복사의 온도와 직결된 현상이다. 블랙홀의 질량이 작을수록 호킹 복사의 온도는 높아지고, 더 강하게 에너지를 방출한다. 마지막 단계에서 블랙홀은 폭발적으로 에너지를 뿜어내며 사라진다. 수십억 년을 조용히 버텨온 천체가 마지막 순간만큼은 격렬하게 끝난다.

지금 이 시점에서 블랙홀 증발을 직접 관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주에 존재하는 블랙홀들은 아직 증발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없을 만큼 초기 상태에 있다. 현재 우주의 온도, 즉 우주 배경복사의 온도가 블랙홀이 방출하는 호킹 복사의 온도보다 훨씬 높기 때문이다. 블랙홀이 실제로 수축하기 시작하려면 우주가 지금보다 훨씬 더 식어야 한다. 지금의 블랙홀들은 증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변 에너지를 흡수하며 조금씩 커지고 있다.

 

블랙홀은 천천히 죽는다, 블랙홀 증발

3. 모든 블랙홀이 사라진 우주

먼 미래에 모든 블랙홀이 증발을 마친다면, 그 뒤의 우주는 어떤 모습일까. 물리학자들은 이 단계를 블랙홀 시대의 끝이라고 부른다.

그 이전에도 우주는 이미 오랜 침묵 속에 있었을 것이다. 별들은 수조 년 안에 대부분 연료를 소진한다. 은하들은 흩어지고, 남은 물질은 블랙홀로 흡수되거나 차갑게 식은 천체 잔해로 우주를 떠돈다. 중성자별과 백색왜성조차 결국 소멸한다. 블랙홀만이 그 모든 것이 사라진 후에도 홀로 남아 우주의 어둠 속에 존재한다. 사실상 블랙홀은 우주 최후의 구조물이 된다.

그리고 블랙홀마저 사라지면, 우주에 남는 것은 호킹 복사가 방출한 열복사뿐이다. 구조도, 질서도, 형태도 없는, 고르게 분산된 에너지. 열역학 제2법칙 — 고립된 계에서 무질서도는 항상 증가한다는 법칙 — 이 완벽하게 실현된 상태다. 물리학자들은 이것을 열죽음(heat death), 혹은 빅 프리즈(Big Freeze)라고 부른다. 우주는 폭발하거나 충돌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균일해지면서 끝난다는 시나리오다.

물론 이것은 현재 물리학이 허용하는 가장 개연성 높은 시나리오 중 하나일 뿐이다. 우주의 가속 팽창을 일으키는 암흑에너지의 본질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암흑에너지의 성질에 따라 우주의 최후는 열죽음이 아닌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개될 수도 있다. 빅 립(Big Rip)이라 불리는 시나리오에서는 우주의 팽창이 가속되다 결국 모든 구조가 찢겨나가는 방식으로 끝난다. 어느 쪽이 실제 우주의 미래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블랙홀은 천천히 죽는다, 우주의 끝

마무리

블랙홀이 천천히 죽는다는 사실은 단순한 천문학적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우주 자체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단서다. 영원히 존재할 것처럼 보이는 것들도, 충분히 긴 시간 앞에서는 결국 소멸한다. 블랙홀도 예외가 아니다.

호킹이 1974년에 발표한 이 이론은 블랙홀에 대한 이해를 바꿔놓았지만, 동시에 더 많은 질문을 만들어냈다. 블랙홀이 증발하면서 내부에 담겨 있던 정보는 어떻게 되는가. 호킹 복사는 그 정보를 어떤 형태로든 보존하는가, 아니면 영원히 사라지는가. 이 질문은 지금도 물리학의 가장 뜨거운 미해결 문제 중 하나로 남아 있다.

블랙홀은 천천히 죽는다. 그리고 그 죽음이 끝이 아닐 수 있다. 블랙홀의 소멸은 우주가 아직 우리에게 설명하지 못한, 더 깊은 무언가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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