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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물질 미스터리

06. 암흑물질 미스터리 , 액시온 — 강한 CP 문제에서 태어난 암흑물질 후보

액시온 — 강한 CP 문제에서 태어난 암흑물질 후보

입자물리학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이상한 우연이 있다. 강한 핵력을 기술하는 양자색역학(QCD) 이론에는 CP 대칭성을 깰 수 있는 항이 방정식 안에 자연스럽게 들어간다. 그런데 실험에서 강한 핵력은 CP 대칭을 거의 완벽하게 지킨다. 이론은 깨질 수 있다고 말하는데, 자연은 깨지 않는다. 이것이 강한 CP 문제다. 그리고 그 해결책으로 제안된 것이 액시온이라는 입자였다.

액시온이란 1977년 물리학자 로베르토 펙케이(Roberto Peccei)와 헬렌 퀸(Helen Quinn)이 제안한 대칭성이 자발적으로 깨질 때 나타나는 가상의 입자다. 극도로 가볍고 전자기력과 거의 반응하지 않아 관측이 어렵지만, 강한 자기장 안에서 광자로 전환될 수 있다는 특성을 가진다. 암흑물질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입자가 아니었지만, 그 성질이 암흑물질 후보로 적합한 것으로 밝혀졌다.

WIMPs가 탐색 공간을 점점 좁혀가고 있는 지금, 액시온은 암흑물질 탐색의 중심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액시온 암흑물질 탐색 실험 — 강한 자기장 속의 마이크로파 공진기 장치

강한 CP 문제란 무엇이며 액시온은 어떻게 탄생했는가

물질과 반물질의 비대칭성을 CP 대칭성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우주에서 약한 핵력은 이 대칭을 깨는 것이 실험적으로 확인되어 있다. 그런데 강한 핵력은 이론상 CP 대칭을 깰 수 있음에도 실험에서는 거의 완벽하게 지킨다. 중성자의 전기 쌍극자 모멘트가 이론적 예상보다 수십억 배 이상 작다는 것이 그 증거다.

이것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면, 어떤 메커니즘이 강한 핵력의 CP 위반을 억제하고 있어야 한다. 펙케이와 퀸은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새로운 대칭성인 펙케이-퀸 대칭(Peccei-Quinn symmetry)을 도입했다. 이 대칭이 자발적으로 깨지면 골드스톤 보손이 하나 생기고, 그것이 CP 위반 항을 자동으로 영으로 만든다. 이 입자에 이름을 붙인 것이 물리학자 프랑크 윌첵(Frank Wilczek)이었다. "이론의 더러운 문제를 깨끗이 씻어낸다"는 의미에서 세탁 세제 브랜드 'Axion'에서 이름을 따왔다.

액시온은 처음부터 암흑물질 후보로 기획된 것이 아니었다. 순전히 입자물리학의 이론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온 입자였다. 그런데 이 입자의 성질을 따져보니 암흑물질 후보로도 자연스럽게 들어맞았다. 이론적 동기가 독립적인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방향을 가리킨다는 점이 많은 연구자들의 주목을 끌었다.

액시온의 물리적 특성과 WIMPs와의 차이점

액시온은 WIMPs와 근본적으로 다른 종류의 입자다. WIMPs가 수십~수백 GeV(기가전자볼트) 수준의 무거운 입자라면, 액시온은 마이크로전자볼트(μeV)에서 밀리전자볼트(meV) 수준의 극도로 가벼운 입자다. 상호작용도 훨씬 약하다. 그래서 찾는 방법도 전혀 다르다.

액시온의 핵심적인 탐색 수단은 프리마코프 효과(Primakoff effect)다. 강한 자기장 안에서 액시온이 광자로 전환될 수 있다는 이론적 예측이다. 이 효과를 이용하면 강한 자기장 속에 마이크로파 공진기(cavity)를 설치했을 때, 액시온 암흑물질이 공진기를 통과하면서 광자로 전환돼 특정 주파수의 마이크로파 신호를 만들 수 있다.

탐색은 라디오 채널을 돌리는 것과 비슷하다. 공진기의 주파수를 조금씩 바꿔가며 특정 질량 범위의 액시온을 스캔한다. 어떤 주파수에서 예상보다 강한 신호가 나온다면 그것이 액시온의 흔적일 수 있다. 탐색 장비는 극저온으로 냉각되어야 한다. 열 잡음이 신호를 압도하기 때문이다.

 

액시온-광자 전환 원리 — 강한 자기장 속에서 액시온이 마이크로파로 변환되는 과정

액시온 탐색 실험의 현황과 앞으로의 전망

가장 대표적인 액시온 탐색 실험은 ADMX(Axion Dark Matter eXperiment)다. 미국 워싱턴 대학에서 운영하며, 수 마이크로전자볼트 대역을 여러 해에 걸쳐 스캔해왔다. 한국의 CAPP(Center for Axion and Precision Physics Research), 미국의 HAYSTAC 등도 서로 다른 질량 범위와 방식으로 탐색을 진행 중이다.

아직 액시온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WIMPs 탐색과 달리, 탐색 가능한 파라미터 공간이 훨씬 넓게 남아 있다. 액시온의 이론적 예측 질량 범위는 수십 자릿수에 걸친 넓은 영역이며, 현재의 실험들이 탐색한 것은 그중 극히 일부다. 가장 유력한 범위인 수 μeV~수십 μeV 대역조차 아직 완전히 커버되지 않았다.

더 넓은 개념의 액시온-유사 입자(axion-like particles, ALPs)도 탐색 대상이다. QCD 액시온보다 다양한 질량 범위와 결합 강도를 가질 수 있는 이 입자들은 여러 이론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ALPs를 향한 탐색은 이제 막 본격화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ADMX 액시온 탐색 실험 — 극저온 공진기와 초전도 자석 시스템

마무리

액시온은 흥미로운 위치에 있는 후보다. 암흑물질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입자물리학의 이론적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나온 부산물이다. 그러면서도 암흑물질로서의 특성을 자연스럽게 갖추고 있다. 두 가지 독립적인 문제에 동시에 대답하는 이론이 옳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많은 물리학자들은 생각한다.

탐색은 아직 초기다. WIMPs가 가장 유력한 파라미터 영역을 좁혀가고 있는 것과 달리, 액시온은 광대한 가능성의 공간이 여전히 열려 있다. 다음 편에서는 시선을 개별 입자에서 우주 전체 규모로 옮긴다. 암흑물질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주의 대규모 구조가 만들어질 수 없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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