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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gold) 미스터리

06. 금 미스터리 , 금은 왜 녹슬지 않는가 — 귀족 금속의 화학적 비밀

06. 금 미스터리 , 금은 왜 녹슬지 않는가 — 귀족 금속의 화학적 비밀

쇠는 녹슬고, 은은 검게 변하고, 구리는 초록색 녹이 낀다. 수천 년 된 금 유물은 파낸 그날처럼 빛난다. 고대 이집트 파라오의 황금 마스크, 수백 년 전 침몰한 선박에서 건져 올린 금화가 여전히 번쩍이는 것은 기적이 아니라 금의 화학적 특성 때문이다. 금이 녹슬지 않는 이유에는 원자 구조의 근본적인 성질이 있다.

금 녹슬지 않는 이유 — 산화가 일어나지 않는 원리

대부분의 금속이 변색되고 부식되는 주요 원인은 산소와의 반응이다. 산소는 반응성이 높아 많은 금속과 결합한다. 철과 산소가 결합하면 산화철, 즉 녹이 된다. 알루미늄도 산소와 반응하지만, 표면에 얇은 산화알루미늄 막이 형성되어 내부를 보호한다. 은은 황과 반응해 황화은(검은 물질)이 생성되어 표면이 변색된다.

금은 왜 다른가. 금이 산화되지 않는 것은 금의 산화환원 전위가 매우 높기 때문이다. 산화환원 전위는 물질이 전자를 잃는(산화되는) 경향성을 나타내는 척도다. 금의 표준 산화환원 전위는 +1.50V로, 대부분의 금속보다 훨씬 높다. 이는 금이 전자를 매우 강하게 붙들고 있어서 다른 원소에게 전자를 내주지 않는다는 의미다.

금 원자 표면에 산소가 닿아도, 산소가 금에서 전자를 빼앗아 산화물을 만드는 반응이 에너지 측면에서 불리하다. 산화 반응이 일어나려면 에너지를 투입해야 하는데, 자연 상태에서 이 에너지가 공급되지 않는다. 그래서 금은 산소와 접촉해도 반응하지 않는다.

 

금속별 부식 비교 — 철의 녹, 은의 변색, 구리의 산화와 대비되는 금의 안정성

귀금속이란 무엇인가

금, 백금, 팔라듐, 이리듐, 오스뮴, 루테늄, 로듐 같은 원소들을 귀금속(noble metal)이라 부른다. 여기서 귀는 귀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귀족(noble)에서 왔다. 영어로 noble metal이고, 화학에서 noble이라는 단어는 반응성이 낮고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성질을 의미한다. 주기율표에서 18족 비활성 기체를 noble gas라 부르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왕수(王水, aqua regia)는 금을 녹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액체로 유명하다. 왕수는 진한 염산과 진한 질산을 3:1 비율로 혼합한 것이다. 이름 자체가 '왕의 물'이라는 뜻으로, 귀족 금속인 금을 녹일 수 있는 물이라는 의미다. 왕수가 금을 녹이는 것은 금이 산화되기 때문이 아니라, 염산에서 나오는 염소 이온이 금 이온과 착화합물을 형성해 금 이온을 용액 상태로 안정화시키기 때문이다. 특수한 조건에서만, 그것도 강한 산을 혼합한 복잡한 방법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이 역설적으로 금이 얼마나 안정한지를 보여준다.

얇아도 변하지 않는다

금은 화학적 안정성 외에도 극도로 얇게 펼 수 있는 성질이 있다. 금의 연성(ductility)과 전성(malleability)은 금속 중 최고 수준이다. 금 1g을 실로 뽑으면 약 2km 길이의 실이 만들어진다. 금박지(gold leaf)로 만들면 한 돈(약 3.75g)으로 축구장 하나를 덮을 수 있을 만큼 얇게 펼 수 있다. 원자 몇 개 두께에 해당하는 얇기다.

이렇게 얇아도 금은 화학적 특성을 잃지 않는다. 표면이 산화되거나 변색되지 않는다. 이것이 금박 기술의 핵심이다. 고대 이집트부터 현재까지 조각상, 건물, 책, 식기, 심지어 일부 음식에도 금박이 사용됐다. 외관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금의 양이 극히 적어도 되기 때문이다.

현대 기술에서 금의 이 특성은 매우 중요하다. 반도체 공정에서 금을 원자 한 층 두께로 코팅하는 기술이 사용된다. 전자회로의 접촉 부분에 금을 도금하면 수십 년이 지나도 산화나 부식 없이 전기가 잘 통한다.

 

금박 제조 과정 — 극도로 얇게 펼 수 있는 금의 전성 특성과 금박지 실물

보이저 금 레코드

1977년 발사된 보이저 1호와 2호에는 각각 금으로 도금된 구리 레코드판이 탑재됐다. 이 레코드에는 지구의 소리, 음악, 인류의 사진, 다양한 언어의 인사말이 담겨 있다. 외계 문명이 발견했을 때 인류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다.

이 레코드를 금으로 도금한 이유는 정확히 금의 안정성 때문이다. 우주 공간에서 보이저 탐사선은 태양 복사, 우주선(宇宙線), 극한의 온도 변화에 노출된다. 어떤 금속도 이 환경에서 수천 년, 수만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금은 그 보장이 가능한 유일한 선택이었다. 현재 보이저 1호는 태양계를 벗어나 성간 공간을 항해하고 있다. 탑재된 금 레코드는 지금도 처음 그대로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을 것이다.

산업에서의 금 안정성 활용

금의 화학적 안정성은 여러 산업 분야에서 핵심적으로 활용된다.

전자 부품의 접촉 단자에 금 도금이 쓰이는 것이 대표적이다. 전기 커넥터, 오디오 잭, 메모리 카드 단자, 반도체 와이어 본딩(회로와 칩을 연결하는 초미세 금속선)에 금이 사용된다. 오랫동안 산화나 부식 없이 낮은 전기 저항을 유지해야 하는 부분에만 금이 사용된다. 전체 회로를 금으로 만드는 것은 비용 때문에 불가능하지만, 접촉 부분만 금으로 처리하면 제품의 수명과 신뢰성이 크게 올라간다.

의료 분야에서도 금의 안정성이 활용된다. 치과 보철물에 금 합금이 사용되는 것은 입안의 타액, 산, 세균에 대해 화학적으로 안정하기 때문이다. 일부 심박동기나 의료 기기의 전극에도 금이 사용된다. 체내 환경에서 부식 없이 장기간 기능을 유지해야 하는 부품에 금이 적합하다.

 

보이저 탐사선의 황금 레코드 — 우주로 보낸 인류의 메시지와 금의 안정성

마무리

금이 귀금속인 것은 희소해서가 아니라 화학적으로 고귀하기 때문이다. 전자를 내주지 않는 성질, 산화환원 전위의 높음, 그 결과로 나타나는 수천 년의 안정성이 금을 다른 금속과 구별한다. 인류가 수천 년 전부터 금을 특별하게 다루었던 것은 이 안정성을 경험적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다음 편에서는 연금술의 꿈, 금을 인공적으로 만들 수 없는 이유를 살펴본다. 화학적 방법으로는 왜 원천적으로 불가능한지, 그리고 핵반응으로는 가능한지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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